오늘 아주 오랜만에 나의 실수, 오해, 천재지변 때문이 아닌 전적으로 '타인'에 의한 퐝당한 일을 겪어 버렸다. 역시 일본 교육 제도는 막장이라 여러분 모두 (글 읽는 분들 아니여요, 나에게 퐝당을 준 그 여러분들입니다) 막장입디다?
이런 일은 작년 1년간 같이 살던 룸메 세 명 중 좀 돌X이 기질이 넘치던 미국 남부 출신 A. 모 R000es 양과의 직/간접적 충돌 밑 실내 기온/에어컨 공방 이후로는 처음 겪는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지옥 같았기에 이번 일은 가볍게 웃어 넘기지만...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나는 X라는 수업의 과제를 위해 형성된 B라는 그룹의 멤버다.
B그룹은 좀 잉여스럽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방학중에도 충실하게 모여서 방학 직후에 있는 발표에 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잉여답게 방학=여행, 예습복습은 개나 줘 라는 주의라서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방학 중엔 못 모여요 이 날만 됨"이라고 제깍 대답을 해주었다. 내 스팸 메일 필터가 그룹 멤버들의 이메일을 아작아작 씹어먹긴 했지만 다행히도 제때 발견해서 스팸->삭제 크리는 먹지 않았다.
그래서 모임 날짜가 잡혔다. 오전 꽤나 이르지만 나름 리즈너블 한 시간에 가까운 어디선가 모이기로 했는데, 아침잠이 지독하게도 많은 나는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어나서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날씨 추운데 파카 입고 자전거 타고 나갔다.
조금 늦기는 했는데, 아무도 없더라? 몇 십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오더라? 춥고 이건 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시간에도 철저하고 15분만 늦으면 친구끼리도 무례한거고 씨부랄씨부랄 거리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스피커의 목소리에 낚여서 나는 냉큼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예정대로 여행길에 기분 좋게 올랐다.
근데 여행 다녀와보니 이건 웬일?!
1. 그들은 모였었다. 그럼 도대체 언제 온 거냐. 내가 비정상이냐, 30분 기다리고 떠났는데? 어쩌다가 지독히도 출석 안하는 나머지가 다 나타난 거냐. 다들 방학엔 집에서 xx짱이랑 놀다가 나온 것인가. (바츠바츠쨩이라고 읽어 보아요, oo쿤 = 마루마루쿤 으로 대체하면 남녀평등 발언 성립 완료) 내가 잘못한 거야 진짜로?!
2. 그리고 그들은 아주 가뿐히 내가 분명히 안된다고 한 날짜 중 하루로 다음 약속을 잡고는 씽~. 그 떄도 제법 모였더군. 과제 다 한 건 좀 대단해 보였다. [아니 여러분께 이런 포텐셜이...! 박지성이 덩크슛을 하는 것 같군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3. 그리고 나한테 온 이메일: [아 우리가 다 만들었으니 발표는 당신님이 하시는 건 어때요, 올 수 있다고 한 날 안왔잖아요ㅋ.] 그나마 나았던 건 만든 스크립트랑 ppt가 첨부되어있었다는 것.
...이 이건 뭐, 뭐냐?!
일단 논리적으로 합리화가 안되잖아?
지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인데? 근데 왜 내가 이예스의 십자가를 얼떨결에 짊어진 그 누군가처럼 대타질을 하는 거지? 일본 내의 한국인 대타는 이승엽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게다가 못 나타난 나타났지만 참가 못한 나한테 발표 하라는 의도는? 1) 함께 망합시다 2) 너님 좀 고생 해보세요 3) 싸우자 4) 전부 다.
여기에 추가해서 그 스크립트/피피티에 쓰인 자료/내용 전부 다 내가 보냈던 레포트들의 내용 판박이더만? 그거 읽고 저게 나오냐 두번 모여서? 아니 크리티컬 한 씽킹썽킹 좀 해봐요, 구몬도 이 나라 꺼잖아, 응? 분석적인 측면 세부적인 내용은 안드로메다에? 아니면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리드 비트윈 더 라인즈?" 어이쿠야 나도 수행이 부족하구나.
그래도 열심히 정지훈씨의 레이니즘과 다른 노래들의 후~하~를 떠올리며 가슴을 가라앉히고 저 멀리 싀브야~까지 나가서 하루죙일 숙제를 쌔려주셨다. 물론 친절하게 오해정정 + 어떻게든 해볼게염 이라는 이메일을 날리고 말이다. 나는 합리적인 도시의 모단한 성인/어른 답게 쿨~하게 실리를 생각하여 대세를 따르려고 했다. 멋지지 않나? 내가 좀 도시남자다.
죙일 숙제 하고 집에 와서 또 숙제 하고 슬라이드 추가 하고 스크립트 고치고 붙여넣기 하고 자르고 후리가나 달고 했더니. 한시간 전 (새벽 0시 30분!!)에 이메일 한통.
[완성본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파일 첨부엔 정말로 완성되어있는 파일이 있더군. 나를 제외한 조원 전원의 발표 분 배분까지!! 아니 어찌하여 이렇게 늦게 이런 유익한 이메일을 보내셨습디다?
...나 지금까지 뭐 한 거냐? 이, 이런 전개의 흐름/의도 전혀 파악 안돼, 완전히 KY해!!
좀 생각해보니 정리가 되더라.
1. 너 참가점수 주기 시져 뿌우. <- 이게 이유없이 가장 정확해보이는 건 내가 악마데빌뽜이야 라서 그런가?
2. 너 못 믿겠음 그냥 우리가 할래 <- 이건 좀 현실적이긴 한데, 그러면 처음부터 주지를 말던가
3. 너의 학습을 위해 훼이크였어, 어려운 건 우리가 할게. <- ...이건 무슨 츤데레 교육법이냐.
여튼 귀찮은 발표 안하게 된 점은 좋고, 기말고사에 올인하면 되는 점도 좋은데.
발표를 통하여 참가점수 쑥쑥 받아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간밧떼☆ ^-' 하고 싶었던 나의 의도/노력/시간은 전부 다 시궁창.
에이씨 발표 중에 난입해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한 방 날려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