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 아이코 퐝당해라 잡다한 딴짓을 하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나의 실수, 오해, 천재지변 때문이 아닌 전적으로 '타인'에 의한 퐝당한 일을 겪어 버렸다. 역시 일본 교육 제도는 막장이라 여러분 모두 (글 읽는 분들 아니여요, 나에게 퐝당을 준 그 여러분들입니다) 막장입디다?

이런 일은 작년 1년간 같이 살던 룸메 세 명 중 좀 돌X이 기질이 넘치던 미국 남부 출신 A. 모 R000es 양과의 직/간접적 충돌 밑 실내 기온/에어컨 공방 이후로는 처음 겪는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지옥 같았기에 이번 일은 가볍게 웃어 넘기지만...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나는 X라는 수업의 과제를 위해 형성된 B라는 그룹의 멤버다.
B그룹은 좀 잉여스럽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방학중에도 충실하게 모여서 방학 직후에 있는 발표에 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잉여답게 방학=여행, 예습복습은 개나 줘 라는 주의라서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방학 중엔 못 모여요 이 날만 됨"이라고 제깍 대답을 해주었다. 내 스팸 메일 필터가 그룹 멤버들의 이메일을 아작아작 씹어먹긴 했지만 다행히도 제때 발견해서 스팸->삭제 크리는 먹지 않았다.
그래서 모임 날짜가 잡혔다. 오전 꽤나 이르지만 나름 리즈너블 한 시간에 가까운 어디선가 모이기로 했는데, 아침잠이 지독하게도 많은 나는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어나서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날씨 추운데 파카 입고 자전거 타고 나갔다.
조금 늦기는 했는데, 아무도 없더라? 몇 십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오더라? 춥고 이건 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시간에도 철저하고 15분만 늦으면 친구끼리도 무례한거고 씨부랄씨부랄 거리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스피커의 목소리에 낚여서 나는 냉큼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예정대로 여행길에 기분 좋게 올랐다.

근데 여행 다녀와보니 이건 웬일?!

1. 그들은 모였었다. 그럼 도대체 언제 온 거냐. 내가 비정상이냐, 30분 기다리고 떠났는데? 어쩌다가 지독히도 출석 안하는 나머지가 다 나타난 거냐. 다들 방학엔 집에서 xx짱이랑 놀다가 나온 것인가. (바츠바츠쨩이라고 읽어 보아요, oo쿤 = 마루마루쿤 으로 대체하면 남녀평등 발언 성립 완료) 내가 잘못한 거야 진짜로?!
2. 그리고 그들은 아주 가뿐히 내가 분명히 안된다고 한 날짜 중 하루로 다음 약속을 잡고는 씽~. 그 떄도 제법 모였더군. 과제 다 한 건 좀 대단해 보였다. [아니 여러분께 이런 포텐셜이...! 박지성이 덩크슛을 하는 것 같군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3. 그리고 나한테 온 이메일: [아 우리가 다 만들었으니 발표는 당신님이 하시는 건 어때요, 올 수 있다고 한 날 안왔잖아요ㅋ.] 그나마 나았던 건 만든 스크립트랑 ppt가 첨부되어있었다는 것.

...이 이건 뭐, 뭐냐?!
일단 논리적으로 합리화가 안되잖아?
지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인데? 근데 왜 내가 이예스의 십자가를 얼떨결에 짊어진 그 누군가처럼 대타질을 하는 거지? 일본 내의 한국인 대타는 이승엽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게다가 못 나타난 나타났지만 참가 못한 나한테 발표 하라는 의도는? 1) 함께 망합시다 2) 너님 좀 고생 해보세요 3) 싸우자 4) 전부 다.
여기에 추가해서 그 스크립트/피피티에 쓰인 자료/내용 전부 다 내가 보냈던 레포트들의 내용 판박이더만? 그거 읽고 저게 나오냐 두번 모여서? 아니 크리티컬 한 씽킹썽킹 좀 해봐요, 구몬도 이 나라 꺼잖아, 응? 분석적인 측면 세부적인 내용은 안드로메다에? 아니면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리드 비트윈 더 라인즈?" 어이쿠야 나도 수행이 부족하구나.
그래도 열심히 정지훈씨의 레이니즘과 다른 노래들의 후~하~를 떠올리며 가슴을 가라앉히고 저 멀리 싀브야~까지 나가서 하루죙일 숙제를 쌔려주셨다. 물론 친절하게 오해정정 + 어떻게든 해볼게염 이라는 이메일을 날리고 말이다. 나는 합리적인 도시의 모단한 성인/어른 답게 쿨~하게 실리를 생각하여 대세를 따르려고 했다. 멋지지 않나? 내가 좀 도시남자다.
죙일 숙제 하고 집에 와서 또 숙제 하고 슬라이드 추가 하고 스크립트 고치고 붙여넣기 하고 자르고 후리가나 달고 했더니. 한시간 전 (새벽 0시 30분!!)에 이메일 한통.

[완성본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파일 첨부엔 정말로 완성되어있는 파일이 있더군. 나를 제외한 조원 전원의 발표 분 배분까지!! 아니 어찌하여 이렇게 늦게 이런 유익한 이메일을 보내셨습디다?

...나 지금까지 뭐 한 거냐? 이, 이런 전개의 흐름/의도 전혀 파악 안돼, 완전히 KY해!!

좀 생각해보니 정리가 되더라.

1. 너 참가점수 주기 시져 뿌우. <- 이게 이유없이 가장 정확해보이는 건 내가 악마데빌뽜이야 라서 그런가?
2. 너 못 믿겠음 그냥 우리가 할래  <- 이건 좀 현실적이긴 한데, 그러면 처음부터 주지를 말던가
3. 너의 학습을 위해 훼이크였어, 어려운 건 우리가 할게. <- ...이건 무슨 츤데레 교육법이냐.

여튼 귀찮은 발표 안하게 된 점은 좋고, 기말고사에 올인하면 되는 점도 좋은데.
발표를 통하여 참가점수 쑥쑥 받아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간밧떼☆ ^-' 하고 싶었던 나의 의도/노력/시간은 전부 다 시궁창.
에이씨 발표 중에 난입해서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한 방 날려줘?